문양의 기원


첫번째 문자 및 기호記號 의 발생 연관설이다

고대 인류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사물의 모양을 모방하여 그림을 새겨 의사전달 수단으로 삼게 되었고 혹은 어떤 주술적인 효력을 빌기 위한 방법으로 쓰여 지던 일봉의 부적(符籍)을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기호와 문자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상형은 결국 문양의 시작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양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이 감상을 목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용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두번째 편물編物 과 직물織物 의 발명 관련설이다

의생활과 주거생활에서 신체의 보호와 장식의 본능 등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게 된 직물의 발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편직물의 발달로 갖가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양양식이 생겨나게 되었고, 인류는 점차 그러한 문양에 각종 상징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복합문

하나의 소재만을 선택해서 문양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여러 소재를 복합적으로 나타낸 무늬는 따로이 복합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복합문벽사를 상징하는 용의 상서로움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서 구름과 같이 표현한다든가, 봄과 장수를 상징하는 매화와 효행을 의미하는 팔가조라는 새를 같이 나타내는 문양들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의미의 무늬들을 배열하는 것과, 각각 다른 의미의 소재를 합쳐 새로운 상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십장생문이 대표적이고 후자에는 물고기·갈대문을 예로 들 수 있다. 물고기는 인생의 여유, 입신출세, 자손번성, 부부 금슬을 의미하지만, 갈대와 함께 합쳐졌을 때는 장수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십장생문은 비슷한 의미의 소재들을 나열하여 그 의미를 강조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십장생은 해, 산, 돌, 물,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말한다.

각각의 소재들을 모두 독립적으로 쓰이더라도 장수를 의미하는데 열 가지를 묶음으로서 좀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십(十)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십장생무늬는 민화, 나전칠기, 도자기, 벼루 등 여러 공예품에서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문양이다.



자연산수문

자연산수문이란 동물이나 식물을 제외한 자연을 소재로 한 무늬를 말한다. 하늘의 해나 달, 구름, 별이 소재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산수화를 보는 듯한 산수문이나 바위를 그린 괴석문을 들 수 있다.

자연산수문이들은 대개 장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에 존재하고 그 생명이 인간보다 월등히 길기 때문이다. 자연산수문 중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는 무늬는 구름무늬이다.

구름은 하늘에 떠다니는 물체로 천변만화의 형태를 지니고 있고 내재적 기세와 강약 허실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옛사람들은 재세 시에 덕을 쌓으면 사후에도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거나 성불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구름무늬는 식물 소재의 덩굴무늬와 마찬가지로 다른 무늬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용이나 거북의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는데 구름을 배경으로 한다든가, 학이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나타낼 때 구름문이 배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봉황은 인·의·예·지·신의 오덕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머리가 푸른 것은 인(仁), 목이 흰 것은 의(義)를, 등이 붉은 것은 예(禮), 가슴 부분이 검은 것은 지(智), 다리 아래가 황색인 것은 신(信)을 상징한다. 또한, 봉황은 색깔에 따라서 종류가 나눠지는데 붉은색의 봉(鳳), 자주색의 악작, 푸른 색의 난(鸞), 노란색의 원추, 흰색의 홍곡(鴻鵠)이 있다.


인공물문

문양의 소재 중에는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인공물을 이용한 경우도 보인다. 인공물을 문양에 소재로 사용할 때는 형태을 취했다기 보다는 의미를 채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물문칠보문이 대표적인데 칠보문이란 생활에 이롭거나 길상 의미의 물건들을 말한다. 칠보는 일곱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동전, 물소 뿔, 방승, 책, 약쑥, 거울, 특경(악기의 일종)이다.

동전은 복을 상징하고 물소 뿔은 다복을, 방승보는 마름모꼴 형태로 경사스러운 일에 쓰이는 보자기의 네 귀나 끝에 다는 금종이로 만든 장식인데,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나타난 문양이다. 화보는 화첩과 책의 모양을 도안화시킨 것으로 복록(福祿)을 의미하는데 순탄한 관직생활을 나타내는 무늬이다.

약쑥의 잎사귀는 한약재로 쓰이는데 이 쑥은 불을 붙이는데 썼다고 한다. 때문에 더욱 귀중하게 여겼고, 장수 등 길상을 뜻한다. 거울은 임금이나 권력층의 상징으로 여겼고, 다복을 의미한다. 특경은 고대 악기의 하나로, 옥이나 돌로 만든 것이다. 인(人)자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소리를 귀하게 여겼다.

칠보와 함께 자주 나타나는 인공물문으로는 여의두문을 들 수 있다. 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어떤 물건의 장식성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꿴구슬[瓔珞]문이나 구슬이음 무늬, 동그라미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고리이음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문자문

문자문가장 대표적인 글자무늬로 들 수 있는 것은 수(壽)와 복(福)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장수하는 것만큼 큰 복은 없었다.
때문에 옛사람들이 표현하는 문양에는 유난히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다. 장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소재인 거북이나 복숭아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수(壽) 자를 표현하여 직접적으로 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문자문은 옷에 수를 놓거나, 떡살이나 다식판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 항상 가까이하는 도구에서도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이외에도 수(壽 )와 복(福)자가 함께 나타낸 수복자문, 건강함을 뜻하는 강령(康寧),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다남자(多男子)문 등이 있다


인물문

불교 미술뿐만 아니라 생활 문양으로도 자주 나타나는 것이 바로 도깨비무늬인데 삼국시대의 기와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은장도, 관청에서 발급하는 문서의 바탕 무늬로도 보이고 있다.
도깨비무늬는 중국의 도철 무늬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역사책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도철을 "사람을 잡아먹지만 그가 사람을 삼키기 전에 그 해가 몸에 퍼진다."고 하였다. 도철의 생김새는 눈이 크고 송곳니가 튀어나온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태이다. 도철은 시각이 예민하여 어떤 사악한 마귀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기하문

기하문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도구들에는 연속된 형태의 줄무늬나 동그라미 또는 동심원 등이 나타나는데, 당시 사람들은 태양이나 햇살, 비를 나타내는 의미로 이런 무늬들을 새겼다고 한다.
도형무늬 외에도 기하문으로 분류되는 것에는 태극문, 팔괘문, 귀신눈문, 거북등문이 있다. 귀신눈문은 도깨비무늬를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동그라미만으로 도깨비가 나타내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에 많이 나타나는 기하문으로는 태극문과 팔괘문을 들 수 있다. 태극은 우주 만물 구성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체이다. 태초에 우주가 생성될 때에 태극이 생기더니, 이 태극이 둘로 갈라져 하나는 음이 되고 하나는 양이 되어 음양의 배합으로 천지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음양이 변화하여 모든 것이 변화 생성되고 새로워져 발전과 번영을 영원히 계속한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릉이나 열녀를 기리기 위한 동네의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에서 태극문을 찾아 볼 수 있다.

팔괘는 온갖 천지 만물의 현상과 형태의 기본이 되는 여덟 가지를 나타낸 일종의 기하학적 상징 부호라고 할 수 있다. 옆으로 길게 한 것을 양효(一)라 하고 가운데가 끊긴 것을 음효(--)라고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한 개의 양효와 두 개의 음효가 짝하기도 하고, 한 개의 음효가 두 개의 양효와 짝하기도 하여 하나의 괘를 이룬다. 팔괘에는 모든 자연현상과 길흉화복이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은 천지자연과 인생의 도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 천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생활에 실천한다면 인간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 등의 자연의 도에 합치될 수 있다고 믿었다. 각각의 괘에는 음양의 상징, 자연, 동물, 인체, 가족 사항 등의 상징이 있다. 팔괘무늬는 왕실에서 사용한 향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건축이나 고분, 주술도구에 벽사와 수호의미로 새겨 넣은 귀신이나 도깨비의 문양이다.
그 기원은 중국 주대(周代)의 청동기에 시문된 도철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로 얼굴 부분을 표현했으나 몸의 형상을 부분적, 전체적으로 드러낸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전이나 고분벽화, 포수(鋪首) 및 각종 공예품 등에 표현하였다.
귀신문은 불교 미술뿐만 아니라 생활 문양으로도 자주 나타나며, 삼국시대의 기와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고대에는 선귀(조상신)나 각종 신들이 신봉의 대상이 되었다.

「회남자(淮南子)」권 13「범논훈(氾論訓)」에서는 '화제(火帝)는 불의 덕으로 왕이 되었다가 죽어서 총신(寵神)이 되었고 우(禹)는 천하를 위하여 수고했다가 죽어서 곡신(穀神)이 되었고 예는 천하의 해를 제거하고 죽어서 종포(宗布)가 되었다. 이것이 귀신이 생긴 까닭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상신에 대한 이야기는 신라의 호국설화나 문무왕의 호국대룡(護國大龍) 설화와 같은 한국의 고대설화에서도 나타나므로 이를 통해 선귀를 숭앙하였던 옛 풍속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고대에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을 반기위해 베풀어진 나례(儺禮) 풍습이나 기두(네 개의 눈이 달린 방상씨(方相氏) 가면)를 쓰고 귀신을 유희, 중국의 개국설화에 등장하는 벽사신인 치우의 형상을 그려 붙이던 풍습 등에서 귀면무늬의 초기 형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삼국유사(三國遺事)」권 1의「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설화에 기반을 두고 비형에 관한 글을 지어서 집에 붙여 귀신을 물리쳤다는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부인을 도둑맞고 춤을 추었다는 내용의「처용랑(處容郞)」에 등장하는 처용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을 통해 옛 사람들이 생각한 도깨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귀면의 상징적 의미는 신이 갖고 있는 힘으로 천재지변과 전쟁, 전염병, 기근 등의 재앙을 물리치고자 하는 토속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다. 벽사신앙은 고대인들이 추구했던 장생사상(長生思想)과 기복신앙의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귀면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된다.

주로 고분, 궁궐이나 사원 등의 건축물에 쓰인 기와, 문고리, 주술적(呪術的)인 제기(祭器)의 장식에서 상징적인 의미의 무늬로 전시대에 걸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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